마지막 축사
가을은 새학기가 시작되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결혼하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개인적으로 주례 부탁은 극구 사양하지만 몇 년 전 가을에 결혼한 제자가 신부 지도교수님에게 주례사를 부탁했으니 나에게 축사를 해달라고 부탁해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나의 생애 첫 축사를 새로운 출발을 하는 모든 이들과 공유했으면 한다.
오늘 신랑 신부에게 뜻깊은 날을 같이 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누군가 저에게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 뭐냐고 물으신다고 아내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 아내도 같은 생각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실 저는 주례를 서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지도 교수님도 주례를 서지 않았고 이때까지 몇번의 주례부탁이 왔지만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랑이 축사를 부탁한다고 해서 거절할 명분이 없어서 이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주례를 서지 않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매번 다른 주례사를 준비해야 한다는게 엄청난 부담처럼 느껴지는 것도 한가지 이유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오늘 축사도 저에게 주어진 하나의 숙제인지라 무슨 내용으로 준비할까 고민하다가 신랑신부에게 책 한권을 선물로 준비하면서 여기에 얽힌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제가 신랑신부에게 주고자 하는 책은 제가 졸업한 학교의 컴퓨터과학과 교수였던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입니다. 마지막 강의라고 하면 언뜻 알퐁스 도테의 마지막 수업을 연상하시는 분은 아마 제 또래 일것 같습니다. 제 모교인 카네기 멜론대학에서는 퇴임무렵의 교수님에게 학교생활을 회고하는 의미로 Last Lecture라는 타이틀로 강연을 부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랜디 포시 교수는 불과 40대 중반에 췌장암 말기로 시한부로 선고받고 정말 마지막 강의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저는 우연히 이 강의 관한 내용을 윌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고 나른한 오후에 진척되지 않은 수많은 일을 미루고 카네기멜론 대학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강의 비디오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잠깐만 보고 밀린 일을 하겠다는 다짐은 금새 잊어버리고 저는 강의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강의에서는 랜디 포시 교수는 본인이 어렸을 때 꾸었던 다양한 꿈에 대한 많은 장벽을 어떻게 이겨나갔는지 시종일관 아주 재미있게 얘기해 주고 있었습니다. 랜디 포시 교수는 Last Lecture를 마치면서 사실 이 강의는 아직은 어린 세자녀들이 나중에 아빠를 기억할 수 있게 하기위해서 준비했다고 얘기합니다. 카네기 멜론 대학의 홈페이지 올려진 이 강의는 이 후 천만명 가까이 보게 되고 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한 월스트리트 기자 제프리 재슬로를 통해서 책으로 나오게 됩니다.
랜디 포시 교수가 얘기한 대목중 특히 많이 공감했던 부분은 “장벽은 내가 얼마나 절실하게 원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오늘 새로운 인생의 첫길을 딛게 되는 신랑신부는 앞으로 항상 꽃길만 걸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주어진 장벽이 나의 절실함을 알아보기 위한 척도로 생각하고 둘이 힘을 합친다면 어떤 장벽도 뛰어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이 책을 읽으면서 랜디 포시 교수의 다양한 인생의 지혜를 배워서 앞으로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또 하나의 반전이 있습니다. 랜디 포시의 강의를 세상에 널리 알린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 제프리 재슬로는 그 이듬해 안타까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약 저에게 시한부를 선고받고 짧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짐을 준비할 수 있는 경우와 그냥 평범하게 살다가 갑자기 주위사람과 이별을 해야 하는 경우를 선택하라면 어느것을 선택하던지 쉽지 않은 결정이 될 것 같습니다. 준비되지 않는 이별이 갑자기 찾아오게 된다면 지나온 나날중 후회스러운 날도 있을 겁니다. 신랑신부는 앞으로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면서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축사가 저의 “마지막 축사”가 되기를 바라며, 두 사람의 앞길에 행복만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